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주로 국내 학자들은 일본의 책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자립을 위해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부국강병을 위한 개혁도 이미 너무 늦었다.근대화를 위한 개혁을 실시했고.일본·중국·러시아가 물고기(조선)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일본을 모델로 삼은 개화파 지식인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의 청년들에게도 당시 일본은 이상적인 국가였다.함께 해석되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강화도 조약과 시모노세키 조약 물론 이러한 주장은 19세기 말 일련의 과정을 보면 실효성이 없다.
여기에는 당시 조선 정부와 개화파 지식인에 대한 평가가 그 핵심에 있었다.입멸을 앞둔 붓다 곁에서 제자 아난이 슬피 울자 이렇게 말씀하신다.
매화 사랑으로도 유명했는데 매화를 ‘매형(梅兄) ‘매군(梅君)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며.그 물음에 퇴계(退溪) 선생은 말씀하신다.
후육곡은 학문을 닦고 심신을 수양하는 심경을 읊었다.전육곡에서는 세속적인 부질없는 마음을 씻어 맑고 순수한 심성(心性)을 닦으려는 의지를 읊었고